詩다움

이 한장의 흑백사진 [신경림]

초록여신 2015. 1. 8. 21:24

 

이 한장의 흑백사진

 신 경 림









빛바랜 사진 속에서 그들은 걸어나온다.

어떤 사람은 팔 하나가 없고 어떤 사람은 귀가 없다.

얼굴이 도깨비처럼 새파란 처녀들도 있고

깡통을 든 아이들도 있다.

모두들 눈에 익은 얼굴이다.

아득한 그리움과 깊은 슬픔에 빠지면서 나도 모르는 새

그들 속에 뒤섞인다.

어울려 거리를 누비고 함께 노래를 부른다.

그러다가 나는 두려워진다.

이들을 따라 내가 저 흑백사진 속에 들어가

영원히 갇혀버리면 어쩌나.



깨닫고 보니 나는 어느새 흑백사진 속에 갇혀 있다.

비로소 나는 안도한다.




*사진관집 이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