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그런 것 [김소연]
초록여신
2014. 12. 25. 15:10
그런 것
김 소 연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창문 바깥에서가 아니라 저 멀리 대관령에서
아침은 그렇게 시작됐다 빨래를 널고 창문을 열어 두고 바깥에 앉아 볕을 쬐고 있을 때 고양이가 다가와 내 그림자의 테두리를 몇 걸음 걸었고 저쪽에 웅크렸다
꿈에서 일어난 일들이 쏟아져 내렸다 허벅지에 떨어진 동그란 핏방울이었고 그다음 양철 주전자였고 그다음 도살장 옆 미루나무였다
단식을 감행했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저 먼 제주도에서
아침은 그렇게 지나갔지만 많이 아팠다 내가 아니라 저 먼 시베리아에서 내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가
할머니는 선지를 좋아했고 엄마는 할머니를 좋아했다 나는 심부름을 좋아했다
자박자박 붉은 물기를 밟으며 도살장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한 발씩 한 발씩 서늘해졌다 검은 앞치마를 두른 아저씨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동물들은 걸려 있거나 누워 있었다 질질 끌려 우리 집 앞을 지나간 건 어제의 일이었다
할머니는 쪼그려 앉아 선지를 먹었다 아주 오래전 그 집에서가 아니라 조금 전 꿈속에서
멀리서 날아온 빈혈이 할머니의 은수저에 얹혀 있었다 할머니의 은빛 정수리처럼 똬리를 튼 채로
아침은 이런 것이다
도착한 것들이 날갯죽지를 접을 땐 그림자가 발생한다 바로 거기에서
나무가 있었다면 새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 사람이 아니라 저기 빈자리에서 나무 한 그루가
*수학자의 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