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별책부록 [정끝별]
초록여신
2014. 12. 7. 11:03
별책부록
정 끝 별
한 무리의 고래가 해안에 몰려들었다
썰물 때가 되어도 바다로 돌아가지 않았다
누구든 죽고 싶은 때가 있는 법이다
거리를 뒹굴다 쓸려가는 낙엽들도
한때는 잉걸불이었건만
죽음이란 생물학적이라기보다 화학적이다
한 평 남짓한 벽을 회칠할 수 있는 석회와
성냥 몇 개비를 만들 수 있는 인과
커피 몇 잔을 탈 수 있는 물로 환원될 뿐이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다
아, 탄소가 빠졌다
주검이 남긴 탄소는 허공을 떠돌다 새 별을 만든다
살아 있는 것들의 동공에는 불꽃이 살고 있어
고래가 물 아닌 별로 돌아가는 게 화학이다
감전이든 감염이든 도망이든 기진이든
모든 죽음은 자살 아니면 의문사라고
당신을 보내고 내가 삼킨 문장들
식어가는 잉걸불처럼 가물대는 별 됐다
아침이면 삭제 가능한 부록 됐다
엔딩 크레딧의 별 책 부록 다 됐다
수평선 밑에서 싹처럼 피어올랐던 고래 꼬리가
그날 새벽 북두칠성 국자에 떠 담겨
바다 밖 페이지에 말줄임표로 못박혔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거야, 당신은?
* 은는이가 / 문학동네, 2014. 10.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