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어떤 아름다움을 건너는 방법 [이병률]

초록여신 2013. 10. 12. 07:23

 

어떤 아름다움을 건너는 방법

 이 병 률

 

 

 

 

 

 

 

 

 

 

 

잠을 자고 있는데 철썩 뺨을 올려붙이는 무언가

마지막 기적의 양(量)처럼

차가운 폭포를 등줄기에 쏟아붓는 무언가

 

 

눈이 내릴 것 같다

 

 

그 무언가 힘으로도 미치지 못하며서

나를 이토록 춤추게 하는 무언가

 

 

내 몸 위에는 한 번도 꽃잎처럼 쌓이지 않는 눈,

바다에도 비벼지지 않는 청어 떼 같은 눈,

태생이 함부로여서 눈은 생각이 많다

 

 

그 무언가 때문은 아닐 텐테 무언가에 의해

그 아무나 때문도 아닐 텐데 아묵에 의해

 

 

그러니까 세상 모든 그날들을 닮으면서 내리는 눈,

오늘 내린 눈을 두 눈으로 박아 녹이고서야

울먹울먹 피가 돌았다

 

 

단 한 번도 순결한 적 없이 마취된 척

한 세계를 가득 채운 냄새나 좇으며

허술하 사랑을 하려는 나여

 

 

눈이 저 형국으로 닥쳐오는 것은 내 마음이 아니란다

 

 

이 마을에서 조난을 당해서라도

서로에게 붙들려야 한다면

 

 

그 밤 모두 우리는 눈이 멀어야 한단다

 

 

 

 

* 눈사람 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