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허공의 범람 [김충규]

초록여신 2013. 9. 24. 07:17

 

허공의 범람

 김 충 규

 

 

 

 

 

 

 

 

비가 쏟아졌고 그는 침 묻힌 손가락에 소금을 찍어 먹었다

형식 없이 비가 허공을 가득 채웠다

흘러내리는 것이 어느 천사의 하혈인지 창이 붉었다

지붕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발자국들이 다녀갔다

ㅡ겨울인데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그가 방금 전화기를 통해 한 말이 애인을 향한 것인지

새를 향한 것인지 고양이를 향한 것인지

그에게 애인이 있었다면

새가 있었다면

고양이가 있었다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했을까

ㅡ네가 오면 되잖아, 꼭 내가 가야 돼?

그의 표정으로 보아

누군지는 모르나 그리 말했을 듯한……

땅에 내린 빗물들은 저들끼리 뭉쳐 울다 웃다 사라져갔다

붉은 창은 내내 붉었다

 

 

 

* 라일락과 고래와 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