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비스듬 야채 가게 [임현정]
초록여신
2013. 8. 31. 11:36
비스듬 야채 가게
임 현 정
주인님은 돌돌 말려 있는 양말짝 같고요
시든 푸성귀 냄새가 났어요
곱은 손으로 까던 콩 몇 알
호주머니에 흘려주고는
살얼음 밟는 소리로 웃었어요
주머니 속은 깊고
자꾸 잠이 왔지만
검게 그을린 페인트 통처럼 춥고
사방이 꽉 막혀 있지요
그만 돌아가요, 어느새 냉방이에요
푸른 천막을 밤처럼 덮어주고
가요 찍찍,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꼭짓점 좌표에 따라 달라지죠
그래서
모눈종이 같은 보도블록을 지나
막대그래프처럼 자라난 나무를 지나
발자국 모양 좌표 끝에
검게 그을린 방이 있어요
비탈에 있는 어느 야채 가게처럼
저도 오래된 얼룩이랍니다
찍찍,
시집, 『꼭 같이 사는 것처럼』(문학동네,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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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정
197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려대 한국어문학과 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1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