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말머리성운 [허만하]
초록여신
2013. 8. 30. 02:32
말머리성운
허 만 하
1
말은 가슴 안에서 다져진 뜨거운 언어가 폭발적으로 뛰쳐나온 순결한 질주다. 달리던 한 마리 말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었다. 어둠의 극한에서 세계의 기원을 생각해내려 수직으로 목을 치켜들고 멀리를 살피고 있는 한 마리 말. 목덜미 이하는 태초의 어둠이다. 처음으로 별빛을 만들어내는 어둠.
2
허무와 허무가 서로를 비추는 1억 광년 하늘을 말굽 소리도 없이 달리는 한 마리 말. 영하의 온도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말. 시여, 교만하지 마라! 중심도 없이 터지는 자욱한 불의 불보라 사이를 달리는 말의 영원은 태어나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한순간 별빛이다.
시집,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문예중앙,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