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나의 아름다운 생 [이성복]
초록여신
2013. 2. 27. 08:54
나의 아름다운 생
이 성 복
오늘 아침 내 앞에 놓인 생은 소 여물통 같다 이제는
쓸모없는 툇마루에 놓인 그것은 거의 고단한 기억이나
다름없다 미세 먼지가 그림자처럼 내려앉고 거미줄이
얼기설기한 그곳에 일찍이 나의 양식과 노고와 눈물과
회한이 있었다 거기서 나는 목백일홍의 화사한 꿈을
꾸기도 했지만, 꿈은 이제 죽은 목백일홍의 꿈으로만
남아 있다 거기서 문득 성층권에서 귀환한 아내가
아프다거나, 오래 안 신던 신발이 집을 나간다거나‥‥‥
그럴지라도 천 년도 더 묵은 노환의 아버지는 나와 내
아이들을 몰라보신다 아득하다는 것은, 까마득하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리라 그냥 텅 빈 것이
아니라 놋주발에 담긴 물처럼 그 속까지 환히 비치는
생, 그 속에서 참매미가 애타도록 울고 나는 驚氣하는
아이처럼 부르르 떨며 일어난다 그럴 때 나의 생은 나를
키웠을지도 모를 새엄마처럼 낯설다 그래,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사람이 없는데도 문득문득 내가 깨어나는 것은
허물어지는 생의 경혈마다 이따금 가느다란 침 같은
것이 꽂히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수술해야 할 그 자리는
눈 까뒤집고 바라보면 돼지의 분홍 음부처럼 곱다, 고와라,
아, 거기 한번 손가락에 침 묻혀 간질어볼까? 고단한
섹스에 은박지처럼 일그러지는 얼굴은 마냥 아름답다
* 래여애반다라, 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