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똥지게 할아버지 [김기택]

초록여신 2013. 1. 20. 09:37

똥지게 할아버지

 김 기 택

 

 

 

 

 

 

 

 

 

똥물의 단맛이 흙과 딸기와 참외에 잘 배어들도록

똥맛을 본 뿌리와 줄기에도 불끈불끈 힘이 붙도록

똥에서 뜨거운 해장국 냄새가 나도록

그 국물의 힘으로 이른 아침의 두통과 숙취가 풀리도록

온종일 똥과 붙어 다니던 똥지게 할아버지.

양어깨를 바닥으로 끌어당겨 허리가 가파르게 휘어지는

똥통의 끈질긴 무게에서

어깨 떡 벌어진 아들의 무게가 나오로독

간지러운 손자의 무게가 매달리도록

늘 통똥을 지고 다니던 똥지게 할아버지.

걸음에 맞추어 넘칠 듯 찰랑거리는 똥통에서

아이 칭얼대는 소리가 들리도록

죽거나 흩어진 식구들 웃음소리가 들리도록

돌 많은 언덕길을 오르내렸던 똥지게 할아버지.

아직도 체온이 다 빠져나가지 않은 똥

아직도 불편한 소리가 소화되고 있는 똥

짜고 맵고 얼큰한 성깔이 곰삭아 걸쭉한 진액이 된 똥

그 냄새를 허파 가득 담고 다니던 똥지게 할아버지.

그 똥 냄새 나는 숨쉬기로 심장에 거친 탄력이 붙어서

된똥의 굵기만 한 단단한 근육이

똥색 종아리에 울퉁불퉁 새겨졌던 똥지게 할아버지.

똥지게를 짋어지지 않은 어느 주말

결혼식장에 나타났을 때

낡은 양복 속에 쪼그라든 주름이 되어 있던

그러나 똥지게 없이도 넓은 실내를 가득 채운 똥 냄새만큼은

싱싱했던 똥지게 할아버지.

 

 

 

 

* 갈라진다 갈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