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거꾸로 매달린 사람-tarot 1 [박주하]

초록여신 2012. 11. 16. 19:42

 

거꾸로 매달린 사람

-tarot 1

 박 주 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시 겨울은 왔다

날린 눈보라가 입천장까지 들이치는데

심장을 뒤덮고 있는 열대야는

도무지 멎을 기색이 없다

 

 

열두 달을 거치고도 이르지 못한 집

열두 번의 죽음을 통과하면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너를 기만하며 채우려던 소망은

어느새 나를 기만하기 시작했고

생은 끝내 되돌려 받는 고통이 되고 있다

 

 

모든 기쁨과 슬픔이

전생과 내생이

늘 사소한 오해의 공식과 손잡고 있다고

聖木들 눈 깊도록 일러주던 말

나 미처 깨닫지 못했으니

잎사귀도 꽃잎도 없이

가지마다 붉은 참회를 품은 시간들은

모두 너에게로 가는 내 살과 피의 바탕이다

 

 

붉은 하늘로 걸어 나가

삶과 죽음의 혼례를 마치고

나는 한 그루 나무로 남으려 하는가

그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깊고 푸른 물길에 귀 기울이려 하는가

 

 

한껏 웃어라

처형받는 세상의 사랑들아

발목을 옥죈 밧줄은 질긴 인연의 뜨거움이다

 

 

* 숨은 연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