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람의 그늘 [강연호]

초록여신 2012. 6. 19. 16:15

사람의 그늘

 강 연 호

 

 

 

 

 

 

 

 

사람의 그늘을 만난 지 오래다

어디 그늘이 없었을까, 눈 흐려진 탓이다

나이 들면 자꾸 멀리 보게 마련이고

멀리 건너다보는 시력으로는

사람의 그늘도 흐리게 뭉개지는 법

 

 

그늘을 헤아리는 심사는

어느 늙은 나뭇가지 사이로

한때 무성했던 세월이 구름처럼

뭉텅뭉텅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일

바람 가는 방향으로 귀를 연 이파리들의

여름에는 키가 크고 겨울에는 늘어졌을

한 시절의 내력을 가늠하는 일

우듬지 여윈 손가락이 바람을 쓸어 넘기즛

아, 나도 언젠가 저런 빗질을 받는 적이 있었더랬는데

덜 마른 빨래처럼 고개 수그리고

머리를 맡겨 생각에 잠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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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누군가의 서늘했던 그늘

그 어두웠던 눈 밑으로

문득 흔들렸을, 잠깐 반짝였을

불빛인지 물빛인지를 놓치지 않았으나

그저 놓치지 않았을 뿐

내가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애써 멀리 외면했던

그늘의 길이를, 마침내는 깊이를

이제 와 곰곰 되짚는 일이다

 

 

그러나 눈 흐려진 지 오래

한 뼘 두 뼘 겨우 더듬을 뿐

사람의 그늘을 재어본 지 오래다

 

 

 

* 기억의 못갖춘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