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유등 연지 [송재학]
초록여신
2012. 5. 10. 11:46
유등 연지
송 재 학
내 하루가 고요를 회복하고 싶을 때
유등 연지를 찾는다
낡은 누각이 그 옆에 누워 아쟁 소리를 낸다
물에선 애장터가 멀지 않은 법
연지는 내가 버린 것들로 자주 넘친다
연지란 이슬과 더불어 사라질 운명이라 믿는 나에게
저수지의 둑이 터졌다고 빗소리에 얹혀
訃音이 온다
연지의 몽리 면적이래야
내가 넓혀온 저녁의 정적과
죽은 이들이 뒤돌아보았던 벌판이 있다
연지는 연꽃보다 고요에 가깝다
그곳에서 자주 수직의 폭포 소리를 듣는 때가 있다
청도 가는 길 어디선가 유등 연지 근처 스쳐갔을 뿐 나는 연지를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연지가 아침해를 집어삼켜 연꽃을 피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가 오래 찾던 사람이 청도에 있었고 나는 그의 상여를 따라 어수선한 벌판과 저녁을 거쳤다 가을을 놓쳐버린 앙상한 나무들이 죽은 사람과의 경계가 어디 있느냐고 잉잉거린다
청도 가는 길에 유등 연지가 있다 당신이 연지를 생각하고 돌아올 때쯤 연지는 보이지 않는다 그 자리에 남아 부글거리는 검은 저수지는 새벽의 당신이 만났던 화엄 염지가 아니다
* 푸른 빛과 싸우다, 문학과 지성사(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