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마흔 [김선우]

초록여신 2012. 3. 19. 10:30

 

마흔

 김 선 우

 

 

 

 

 

 

 

 

 

 내가 피 흘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공기방울이

 내게 다가오는 저녁은 무서운가

 

 

 내가 기억하는 공기방울을 쫓아

 수목원에 들어선 길이었다 들어서고 나니

 마흔이었다 폐업신고 중인 수목원에서

 출가한 시인의 소식을 듣는다

 꽃잎이 느리게 졌다

 누가 죽었다는 얘기를

 다시 태어나려 한다는 얘기로 들을 때처럼

 평화롭다

 

 

 바람이 느리게 불어

 공기의 결에 난 상처 딱지를 살살 떼어내고

 기억하는 가장 쓸쓸한 배꼽들에 연씨를 심어드린다

 누군가는 아직도 내게 출가를 권하지만

 

 

 출가해 수행자가 되면

 내게 오는 모든 이를 사랑해야 할 텐데

 마흔,

 나는 이제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직 그 모두를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편협한 사랑이 용서되는 시인으로 남기로 한다

 사라질 수목원의 정문 위에 붉은 공기방울을 찍어 비문을 쓰면서;

 

 

 여기까지 시속 100킬로미터로 달려왔지만

 여기서부터 나는 시속 1센티미터로 사라질 테다

 

 

 (날이 저문다…… 킥킥…… 공기방울들이 터진다…… 억울하지 않다…… 너를 찾으면서…… 킥킥…… 살아 있다면…… 누구나 마흔은 될 테니까)

 

 

 

*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 창비, 2012. 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