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내리막의 힘 [문인수]
초록여신
2012. 2. 14. 18:02
내리막의 힘
문 인 수
고물 프라이드, 달리던 차 엔진이 끝내 천천히 꺼져버린다.
다행히 아주 미미하게 경사가 져 있는 데여서
고가도로 그늘 아래 널찍한 공간으로 차를 몰아넣을 수 있었다.
핸드브레이크를 당겨 차를 세웠다.
네 바퀴가 길바닥을 꽉 잡고 버틴다. 시꺼먼 아스팔트가 그녀에겐 지금
단단한 늪이다. 퍼져 난감한 프라이드 옆을,
프라이드를 뒤덮은 고가도로 위를
마음껏 달리는 차들의 진동 때문에
그녀의 프라이드는, 끊임없는 파문에 떠밀리는 마른 연잎 같다. 이 연애의 끝자리,
그녀가 안전벨트를 맨 채 울먹거릴 때
어여쁜 귀고리가 달랑대며 한사코 그녀를 지킨다. 하지만
구겨진 프라이드는 이제 폐차될 것 같다. 견인차가 도착하고
핸드브레이크를 풀자 움찔, 저를 푸는
이 프라이드는 또 무엇인가.
내리막엔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하고 싶은 힘이 있다.
* 적막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