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랑과 희망의 거리 [김소연]

초록여신 2012. 1. 16. 07:33

 

사랑과 희망의 거리

 김 소 연

 

 

 

 

 

 

 

 

우리는

서로가 기억하던 그 사람인 척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빗방울에 얼굴을 내미는

식물이 되고 싶었다고 말할 뻔했을 때

 

 

너,

살면서 나는…… 살면서 나는……

그런 말 좀 하지 마

죽었으면서

 

 

귀가 아프다

가면이 열리는 나무가 있다면

이 순간에 가지 끝이 축 처졌을 것이다

아니, 부러졌을 것이다

 

 

사실은

이해를 하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깨로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들

 

 

다가갔다 물러섰다,

빗방울이 앉았다 넓어졌다 짙어지는

우리의 어깨가

얼룩이 질 때

 

 

유리창 같다, 니 어깨는……

고막이 있니, 니 어깨는……

 

 

필요한 말인지

불필요한 말인지

알 길이 없는 이 말은 하지 않기로 한다

 

 

빗방울의 차이에 대해 말할 줄 아는 사람과 마주 앉아 있다

하수구로 흘러가는 빗방울이 되어서

 

 

 

* 2011 제57회 現代文學賞 수상시집, 수상시인 자선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