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토막 잔치 [유종인]

초록여신 2011. 12. 15. 09:38

 

 

 

 

 

 

 

 

 

 

오랜만에 컵라면을 먹으려 뜨거운 물을 부으니

사무치다 굳은 면발의 파도 잘게 부서져 있다 그 위에

마른 새우와 파가 잘게 얹혀 있다

나무젓가락의 사타구니를 벌리다 보니

위아래를 분간할 수 없는 토막이다

주검의 냄새가 가신 나무토막 시체다!

뒤돌아보니, 토막토막 끊긴 기억의 필름이며

도시로 들어온 강물은

수도꼭지 끝에서 토막으로 마실 뿐,

바다라면 횟집 수족관 속에서 토막인 채로 잠잠하다

그 토막 난 바닷물 속에 굼뜨게 움직이는 농어 한 마리,

어느 날은 잘 저며진 칼 맛으로 토막 나리라

거리에서 지나친 그 여자는 어느 날 여행 가방에 담겨

제가 지은 죄의 항목을 따질 겨를도 없이

토막 시체로 발견되리라 그럴 수 없이 착한 그녀의

봄날은 갑작스런 추위에 칼 토막이 나고

전화를 걸던 거리의 남자는 토막 난 말들만 꿰맞추다가

허공에 담배 연기를 토막토막 베어 먹인다

토막이 아닌 전부(全部)는 모두 위험하다 하늘의 속내를 뒤지려는

느티나무 고목은 급격히 썩어가고 아직 전체로 연결되려는

전기선(線)들은 뭉툭한 플러그들로 한 번 토막이 난다

도로로 기어 나온 뱀들은 제 무늬 위에 타이어 무늬를 덧씌울 때

토막으로 전체를 잇는 지하철이 땅 밑을 흐를 뿐

누군가 죽으면 저 관(棺)도 한 토막의 단정함으로 간직된다

꽃도 한 토막, 사랑도 한 토막이라 전부는 꿈도 못꿨다

토막을 주고 토막을 거슬러 받을 뿐

도시에 오면 코끼리도 고래도 거대한 토막으로 바뀐다

첫울음 뒤에, 내 탯줄에 손을 댄 사람을 알 수 없듯이

 

 

 

* 사랑이라는 재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