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입상(立像) ……· 유종인
초록여신
2011. 12. 8. 11:11
입상(立像)
ㅡ길상사에서
예전에 고급 요정으로 쓰였다는 이 절에 어디 사연이 옹근 퇴기(退妓) 할멈은 없을까 둘러보다 절 마당 한편에 웬 조각상 있는 데로 끌렸습니다 화강암 보살상인데 어디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마치 성모마리아 상을 반쯤 우려낸 게 아닐까 싶게 보살의 맵시라지만 눈매 고운 기생의 뒤태를 에두르고 어딘지 성모마리아의 맘씨마저 서려서 이거 참 대단한 꼼수구나 내처 보살만은 아니구나 지극한 것들, 아니 지극한 맘들은 이거니 저거니 한 배[腹]에서 여럿을 낳고도 시침 뚝, 그저 하나라니! 그마저 작심하고 헷갈려 보인 게 아닐까 그 석수장이 손놀림이 이만저만한 오지랖이 아니구나 마리아의 얼굴로 보살의 마음이 미소 짓는구나 해찰 떨다가 아마도 내 찾던 늙은 퇴기 할멈도 저 속에 슬쩍, 뛰어들어 미륵의 팔짱을 끼고 가만 돌아 나간 건 아닐까
아, 참 헷갈려도 좋은 다면체(多面體)구나, 요정을 버리고 절간으로 돌아든 마음이 그래도 여간 요염하지 않았습니다
* 사랑이라는 재촉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