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동백병원 [박진성]
초록여신
2011. 10. 17. 10:27
나, 동백처럼 마음 둑둑 부러뜨리며
응급실 침대에 눕고야 보았네
선운산 도솔암 흘려 읽은 글자들
아니 온 듯 다녀가십시오
눈동자에 번져서 동백처럼 붉어지던
꽃잎처럼 얇아서 희미하게 미끄러지던
누가 걸어놓았을까 아니 온 듯
다녀가라는 말, 응급실 침대에서 꽃잎 흐르듯
몸 흐느적거리며 주사도 마다하고 약도 밀어내며
병원 밖으로 걸어나오네
불안이나 발작 자살 충동까지도
병원에 버리고 돌아오는 게 아니라
꽃 피듯 꽃 지듯 내 마음 진창 어딘가에
동백꽃 무너진 자리처럼 비밀로 간직하는 것,
아니 온 듯 다녀가십시오 그 전언
한 번도 맞아본 적 없는 주사액처럼
혈관에 스미네
갈 곳도 없지만 나, 눈 자박자박 밟으며 터미널로 걸어가네
선운사 동백이 아니 온 나를
다녀가라고 다녀가라고 부르고 있네
그 환청, 하, 음악 같아 아니 온 병들도
죄다 다녀가시라고 나 응급실 불빛처럼
붉어지고 밝아지고 있었네
나, 동백처럼 눈밭 굴러다니며
무너진 마음들 궁글리고 불러들여
이 세상에 꼭 하나뿐인 병원이고 싶었네
* 아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