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백제의 가을 [박진성]
초록여신
2011. 10. 17. 10:22
늦은 밤 공주(公州)의 비애를 만지는 것은
금강 물결에 잠긴 초승달 뾰족한 우울감은 아니다
비 그치고 지금은 병원에서 막 퇴원한
사촌 누이 충혈된 눈 속에서 빛을 건져내는 시간,
새로 새벽의 바람이 강 물결 퍼덕이게 하는……
누이가 울고 있다, 금강대교 떠미는 고소공포
긴긴 길 지나…… 부여 가는 길에는 측백나무가 많은데
벌써부터 잔주름을 품은 공기가 하늘 가득
여명을 난반사한다 울음이 다리를 만들면 울음으로
건널 것, 발작이나 공황 따위는 초승달에 얹어놓고
누이야 누이야 백제에 달이 뜨면 삼국유사 누런 종이 위에
눕자 쓰다듬어줄게 새로 빛을 머금은 측백나무 이파리
단단한 울분으로 금강에 새겨진 향가 몇 수…… 건너
금강다리 다 지나면 빛바랜 종이에 새로 쓰는
시가 내겐 있단다 강변과 눈물 사이 바르르 떠는 나무의 결 따라
이십대 마지막 가을이 발굴되지 않은
어느 부족 족보처럼 강물에 고요히 눕고 있으니
가을, 오 가을
* 아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