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어쩌면 시인이 아닐지도 모르는 증후군 [성미정]

초록여신 2011. 9. 15. 09:35

 

 

 

 

 

 

 

 

 

 

 

코딱지를 씹어 먹어봐도 내 콧구멍

냄새를 맡을 수 없어 절망하고 있는

나는 어쩌면

 

 

불면증을 유지하기 위해서 하루에

한 시간 꼭 낮잠을 자줘야 하는

나는 어쩌면

 

 

수요일이 오면 오천 원에서 육천 원

사이의 가난한 꽃다발을 고집하는

나는 어쩌면

 

 

백합꽃의 봉우리가 조금이라도 열리면

거기에 코를 대고 킁킁대고 있는

나는 어쩌면

 

 

시인의 변태일지도 모르는

나는 어쩌면

 

 

그러나 이 넓디넓은 광화문에선 누가

시인인지 아무도 모르니 내가 시인의

변태일지도

 

 

아무도 모르는 셈이다

 

 

귀와 코 중 어떤 것이 더 길어져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도 없는 셈이니

 

 

어쩌나 나는

 

 

 

* 시집 『읽자마자 잊혀져버려도』, 문학동네, 2011.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