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지독(砥犢) ……·김영남

초록여신 2011. 9. 10. 09:53

 

 

 

 

 

 

 

 어머니가 보내온 감 상자는 한 바퀴 빙 돈 테이프를 억세게 뜯어내도 어머니이고 상자 속 상자를 살짝 열어봐도 어머니입니다.

 

 

 깨질세라 다칠세라 앉힌 것들, 너는 야무지니까 엎드려 성을 좀 돕고, 넌 뚱뚱해 넘어지면 큰일 나니깐 가운데 앉고, 넌 또 구석으로 가고…… 꿇린 무릎 사이사이 낀 종이 안대까지도 모두 어머니 말씀, 말씀이란 때론 어머니 위에 있는 경우가 있고 어머니 곁에 있는 경우도 있지만 어머니 밑에 있는 말씀이 더 빛나고 가지런합니다. 이럴 땐 말씀이 아니고 너이고 나이고 있는 그대로 윤나는 정성입니다.

 

 

 말씀 들으며 먼 골목 방황하고 있는데, 뒷줄 모서리 뾰족한 모습으로 서 있는 녀석이 '형 나야, 나 준이야'합니다. 녀석을 입술에 갖다 대니 못, 장도리 가지러 연장 창고를 왔다 갔다 한 숨찬 볼이 있고, 벌집 따러 나무에 오르려다 떨어져 다친 상처의 딱지도 있습니다. 6살 때 멀리 떠난 동생이 형에게 인사하러 여기까지 쪼그려 앉아 온 모양입니다. 딱지가 우리집의 어떤 내력 같아 포동포동한 놈들만 골라 옆집에 보냈습니다.

 

 

 돌아온 쟁반에는 무엇이 반들반들, 시골에 홀로 남은 어머니가 큰아들에게 보내온 세발낙지였습니다. 옆집 어머니는 아직까지 득량만 개펄 바닥을 기어다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감들과 데쳐온 낙지 머리가 반들반들 닮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 반들반들한 것들, 반들반들한 모습으로 빛나는 것들, 반들반들 빛난다는 것은 어미 소 혀의 어떤 보살핌이 곡진하게 숨어 있다는 뜻이겠지요. 나의 앞길이라는 말씀이겠죠.

 

 

 

* 김영남 시집 『가을 파로호』(문학과 지성사,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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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고 情다운 추석 명절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