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봄밤 [유형진]
초록여신
2011. 3. 28. 23:13
봄밤
ㅡ썩어 가는 목련 꽃잎의 경우
흐름은 없었고 반 바퀴만 돌면 모두 제자리일 것 같은데 꼭 한 바퀴를 다 돌아 어떤 날로 간다.
어떤 날. 목련이 더러운 꽃잎을 떨어트리며 자살하는 봄밤.
텅 빈 곳이 너무 많아 뭉텅뭉텅 잘렸고 밑둥치엔 잘린 것들이 흩어진다. 바람이 불어도 흩어진 것들은 날아가지 못하고.
너는 딸기 맛 솜사탕이 되어 봄 하늘을 하염없이 날고 싶다고 했지. 유치하고 지긋지긋한 것들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계속 피할 수 없는 물음표만 들고선 원치 않는 생을 따라 없던 미로를 만들어 헤맨다.
카니발이 끝난 놀이동산의 회전목마가 끄덕끄덕 졸고 있는 새벽, 잎도 나지 않은 나뭇가지에 안간힘으로 매달려 있는 꽃들의 간절함이 속수무책일 때.
바람이 지나가고 화르륵 일어서는.
* 가벼운 마음의 소유자들 / 민음사, 2011. 3.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