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고장 난 풍금 [배영옥]
초록여신
2011. 3. 15. 11:05
대체 어떤 소리들이 빠져나갔기에
저렇게 기울어 있는 걸까
고장 난 풍금의 건반을 건드리자
아직 못다 뱉은 소리라도 있는 것처럼
저음의 목쉰 소리가 내려 깔린다
희고 검은 건반들은 한번 정한 자리에서
비뚜름히 기울어 있을 뿐
너무 오래 소리를 불러내
낡아버린 흔적들이 차곡차곡 남아 있을 뿐
건반 따라 이어진 여러 가닥 줄들,
한 몸처럼 움직이다가도
어떤 때는 아예 꿈쩍도 안 한다
보이지 않는 피아노 줄처럼
나도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건바을 누르는 누군가의 손끝에 따라 울고 웃는
꼭두각시 인형이 아닐까
그래서 내 웃음 속에는
고장 난 풍금 소리처럼
울음소리가 섞여 있는 것인가
* 뭇별이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