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바람의 작명가 [김태형]

초록여신 2011. 2. 28. 10:19

 

 

 

 

 

 

 

 

 

 

어느 작명가가 지은 것은 내 이름만은 아니다

지나가는 이를 불러다 얼마를 주고

이름을 지었다는데

척 이름자를 적어놓고는

장차 시인이 될 운명이라고 했다든가 그이는

그렇게 말했다 한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운명이라는 게 다가온 것일까

그게 아니지 싶기도 해서 딴청을 부려보는데

생각해보면 아마도 떠돌이 작명가는

이름 한번 지었다 싶어

그리 말했을 것이다

그 운명이라는 것이 말하자면

시를 쓰다 바람에

구름 한 점 걸어놓지 못하고 떠돌던

자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처음으로 이름을 지어 불러주는 것

부르고 다시 지워내는 그것은 구름과 바람의 문장이다

그렇게 그가 내 이름을

처음으로 부른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도 딱히 틀린 운명을 살지는 않았던 모양일까

나에겐 그이의 운명도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 코끼리 주파수 / 창비, 2011,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