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책 읽는 남자 [강기원]

초록여신 2011. 1. 27. 12:12

 

 

 

 

 

 

 

 

 

 

실직은 질식이다

목을 죄던 것들이

어느 날 툭 끊어졌는데

이번엔 보이지 않는 손이

온종일 그의 목을 조른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손보다 더 집요하다

아침마다

단정히 넥타이를 매고

서류 가방을 들고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그는 집을 나선다

아침 아홉 시 입실

밤 아홉 시 퇴실

매일 밤 늦는

그의 귀가를 기다리며

아내는 야근 수당을 기대하리라

도서관 그 자리엔

언제나 그가 있다

책보다는 창 밖에

멍한 시선 자주 보내는

말쑥하고 창백한

높은 도수 너머의 그가

자주 목덜미를 문지르는 그가

 

 

 

*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