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명동성동 [정호승]
초록여신
2011. 1. 4. 11:53
바보가 성자가 되는 곳
성자가 바보가 되는 곳
돌멩이도 촛불이 되는 곳
촛불이 다시 빵이 되는 곳
홀연히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곳
돌아왔다가 고용히 다시 떠날 수 있는 곳
죽은 꽃의 시체가 열매 맺는 곳
죽은 꽃의 향기가 가장 멀리 향기로운 곳
서울은 휴지와 같고
이 시대에 이미 계절은 없어
나 죽기 전에 먼저 죽었으나
하얀 눈길을 낙타 타고 오는 사나이
명동성당이 된 그 사나이를 따라
나 살기 전에 먼저 살았으나
어머니를 잃은 어머니가 찾아오는 곳
아버지를 잃은 아버지가 찾아와 무릎 꿇는 곳
종을 잃은 종소리가 영원히
울려퍼지는 곳
* 밦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