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 달콤하고 말랑말랑한 [김은숙]
세상의 핏줄 깊숙이엔 불온한 꿈이 잠복해 있다는 거 당신도 알지? 실핏줄보다 많이, 실핏줄처럼 쉼 없이 온몸을 흐르며, 손끝 발끝까지 데우는 불온한 꿈. 그게 뭐냐고? 꿈도 꾸지 말라고 하잖아. 꾸어서는 안 되는 꿈, 그게 바로 불온한 꿈 아니겠어? 당신은 어때? 안 된다고 금지해도 어느새 달려가버리는 강렬한 매혹 같은 것 없어? 쓸데없이 불온한 꿈은 왜 꾸느냐고? 꿈이라도 꾸지 않으면 못 견디겠거든. 아니, 깊숙이 빠져들수록 참 달콤하거든. 그윽하고 행복하기까지 하다는 거 당신 모르지? 갑자기 그렇게 엄숙한 표정 짓지 마. 당신이 위태롭게 보는 꿈의 경계를 나는 매일 넘나들어. 내 핏줄이 살아 있는 매순간 불온한 꿈에 골똘하며 마냥 자유로워지기도 해. 마음껏 유영하는 꿈의 세계 당신 알아? 그렇게 측은하게 바라보지 마. 불온한 꿈이 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몰라서 그래. 맨발로 보드라운 풀밭을 거닐고, 향기 가득한 꽃밭에서 아득해지듯, 온몸과 마음이 말랑말랑해져서, 나는 서서히 붉게 물들어가. 허공 같고 벼랑 같고 아득하기도 아찔하기도 한 꽃밭을 거닐어, 비로소 달콤한 과즙 무르익는 둥근 영토에 들숨 날숨 혼곤한 숨결을 부리기도 하지. 그래, 꽃잠 같아. 두근거리며 설레다 어느새 말갛게 익어버리는 그 아련한 꽃잠.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저런, 당신 잣대로 함부로 짐작하지는 마. 그래! 당신도 한번 꿈꿔봐! 불온한 세계로 들어와봐! 몸과 마음을 하염없이 낮추고 이 그윽한 세계로 걸어 들어와봐! 많은 것이 달라질 거야. 마음 넉넉한 우거진 숲과 깊고 그윽한 수평의 그늘을 갖게 될 거야. 뭐라고? 함부로 선을 넘나들다간 오히려 병이 든다니, 무엇을 지키기 위해 누가 만들어놓은 어떤 선? 생각과 마음과 시선과 꿈마저도 그렇게 선을 그어놓은 당신 삶은 어떤 건데? 통하지도 않는 이 무의미한 대화 그만두자. 당신과 나의 대화, 정말 지루하다. 그치?
* 손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