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후회 [이준규]

초록여신 2010. 12. 13. 11:13

 

 

 

 

 

 

 

 

 

 

 

 

 

전화벨이 울리다 만다.

 

 

많이 양보해서,

 

 

가죽나무 이파리 위로 떨어지는

 

 

비를 사시나무 이파리가 보고 있다.

 

 

많이 양보해서,

 

 

희끗희끗 떨어지는 비는,

 

 

하얀 것에 휙 그어진

 

 

칼자국 같다.

 

 

많이 양보해서,

 

 

이마를 짚고,

 

 

부질없는 산보도 관두고,

 

 

많이 양보해서,

 

 

아주 꺼지지는 말고,

 

 

잊은 것을 애써 꺼내려 말고,

 

 

많이 양보해서,

 

 

희끗희끗 떨어진 비가,

 

 

희끗희끗 떨어진 피로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도 환상도 없었던 삶,

 

 

나는 너를 사랑한 일 없고,

 

 

너는 나일 뿐이었고.

 

 

 

 

 

* 토마토가 익어가는 계절 / 문학과 지성사, 2010.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