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푸른 잎의 시간 [김은숙]

초록여신 2010. 12. 6. 02:17

 

 

 

 

 

 

 

 

 

 

 

언제부턴가 몸 여기저기 푸른 무늬가 생기더니

팔 언저리부터 작은 이파리가 돋아났다

하나 둘 고개를 내미는 잎들이

당혹스럽게 막무가내로 푸르러지며

하루하루 나무가 되고 있는 내 몸이 의심스럽고 두려웠다

지금의 생이 저물고 어느새

다음 생으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이

무성했던 내 몸의 푸른 잎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내밀며 밖으로 향하던 잎들이 나를 그윽이 바라보며

둥글고 깊은 빛으로 안아주는 시간이 길어지고

잎들의 눈빛을 나도 기도처럼 마주하자

푸른 눈빛들이 내 몸을 관통하여 깊숙이 들어섰다

내 안에서 나무의 시간이 익어갈 무렵

차분히 고개를 숙이던 잎들이 조금씩 떠날 기운을 보였다

 

 

아침이면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이파리들

자고 나면 잠자리에 수북이 이파리가 쌓여

몸 여기저기에 물빛이 고였다

여러 차례 물빛을 머금는 사이

다가오는 이별의 시간도 마음으로 받아들여 순응하게 됐다

모든 잎들이 떠나자 겨울나무처럼 나는 다시 앙상하고 소슬해졌고

이슥토록 눈만 서늘히 망연해지다 보니

몸 안 깊숙이 오롯한 물줄기 하나 생겼다

마음 숲 속에 들어앉아 물소리에 잠겨서 흐르는 날들

모르는 사이 어쩌면 나무의 몸 나무의 마음이 되어

이 생에서 저 생으로 건너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 손길, 천년의 시작(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