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손가락이 하는 말 [길상호]

초록여신 2010. 10. 6. 16:30

 

 

 

 

 

 

 

 

 

 

 

 

나는 당신 발바닥에 사네

굳은살 덮인 농담을 건네며

티눈 박인 눈치를 살살 보면서

당신의 발뼈 사이 오가네

가느다란 손가락 끝에는

통점 다스리는 지문을 키워왔네

열 개의 발가락을 지나

복사뼈 속 통증에 닿으면

지문은 미세하게 출렁이네

손가락을 통해 나는 심지어

통증의 종류와 지나온 길까지

정확히 짚어낼 수 있네

그리하여 내게 발을 맡긴 당신은

비밀을 다 털어놓아야 하네

부끄러운 신음 속으로

조용히 눈을 감거나

먼 곳으로 눈을 돌려야 하네

냄새나는 발바닥에 살지만

마사지를 끝내는 순간

당신은 나의 지문으로 묶이네

비가 오는 날이면 꿈틀

지문 속 당신이 아파오기도 하네

 

 

 

* 눈의 심장을 받았네 / 실천문학사, 2010.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