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감나무 밑에서 [유용주]
초록여신
2010. 10. 4. 06:10
한가위 지나자
바람이 한결 서늘하다
벌레들의 잔치,
별들의 세상인데
나는 일찍 곪아 떨어진 감
한바탕 소나기에 개똥과 함께
풀구덩이에 처박힌 홍시도 못 된 감
그 주위를 참깨보다 작은 개미들이 들락거리고
털이 숭숭한 쉬파리가 날아다닌다
따뜻한 쪽으로
파리와 모기들이 옮겨 다닌다
기를 쓰고 쫓아내도
사람 쪽으로 붙는다
누군가 뒤꿈치로 밟아 으깬 자리
설익은 감씨 두어 개
흙 속으로 몸을 기울인다
ㅡ『크나큰 침묵』, 솔(1996)
* 감나무 잎에 쓴 시, 살림터(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