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오늘도 무사히 [남진우]

초록여신 2010. 9. 24. 11:14

 

 

 

 

 

 

 

 

 

 

 

하루 종일

해는 하늘에서 끓고

내 안에선 불에 탄 눈먼 아이의 고함 소리가 울려퍼진다

조용한 사무실 유리창으로 스며든 햇살이

노트북 자판에 은빛 파편으로 튈 때

 

 

내 안에서 울려 퍼지는 고함 소리는

내 안에서 연기를 내며 척추 기둥을 휩싸고 돌고

머리 속에 그을음으로 번진다 내가 꾸역꾸역 삼킨

하루 한낮의 이 막막한 적요

 

 

하지만 너무나 평온한 나는

서류를 정리하고 동료와 잡담을 나누고

내 속에서 계속되는 고함 소리를 한사코

눌러 죽인다 불에 탄 눈먼 아이가 소리 지르며

내 안을 물러뜯고 할퀴는 동안

오늘도 무사히 저무는 하루

 

 

하루 종일 해는 내 안에서 끓고

거리는 불에 탄 눈먼 아이의 고함 소리로 가득하다

맨발로 뜨거운 모래 위를 걷는

아이들이 울며 아우성치며 거리를 누빌 때

멀리 도시 끝에서 다급히 다가오는

불자동차 소리

 

 

끌려가는 아이들의 목쉰 고함 소리와 함께

나는 어둠에 잠긴 집으로 돌아온다 오늘도 무사히

저문 하루를 애도하며

편안히 잠자리에 든다

 

 

 

 

* 새벽 세 시의 사자 한 마리, 문학과 지성사(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