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무화과나무 그늘 [정복여]

초록여신 2010. 9. 21. 09:31

 

 

 

 

 

 

 

 

 

 

 빗방울 하나가

 무화과나무 가장 높은 이파리에서

 다음 이파리로 그다음 이파리로

 터진 몸을

 주욱 흘리며

 

 

 ……나는 지구로부터 27142광년 떨어진 B361 소행성에서 617개의 행성과 4758개의 위성을 지나 146239노트로 달려 6824일13시간49분21초 만에 이곳에 도착한 8445821256번째 왕이라……오……와……앙……

 

 

 나뭇잎마다 붙들고 다급하게

 외치다가! 외치다가……

 남은 몸을 간신히 거두어

 무화과 발밑에서 살았다지

 왕관도 옥새도 묻었다지

 

 

 무화과나무 아래는

 그렇게 사라진

 빗방울들의 왕릉

 그래서 이렇게 서늘하다지

 

 

 

* 체크무늬 남자, 창비(2010.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