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과 하나의 방 [정복여]
초록여신
2010. 9. 21. 09:16
방을 열면 제일 먼저 보이는 건 들판이에요
풀빛 바람이 쫘악 펼쳐지는
들판이 끝나는 곳에는 조그만 개울이 있죠
어떤 밤에서 떨어져나온 별인지
저 조약돌 상앗빛 상처를 씻고 있군요
내를 건너면 봄 여름 가을의 옷들이
착하게 걸려 있구요
한껏 부드러워진 태양이
사방으로 주황빛 커튼을 드리우네요
저기 애벌레 친구가 다녀간 식탁 보이죠?
달그락달그락 달은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구요
텔레비젼 옆에 놓은 전화는
여전히 팔을 괴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해요
바람 천둥의 베란다, 거길 휘돌아나오면
문패처럼 붙어 있는 나뭇잎 자리,
다시 처음 현관이 나오죠
그곳엔 미처 못 보았던 시큼하고 달큼한
나무 하나의 신발이 가지런해요
그러니까 아침 식탁에서
사과 하나를 먹는다는 것은
나무 한 그루를 그대로 내 몸으로 신는 일이지요
* 체크무늬 남자, 창비(2010. 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