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박형준]
초록여신
2010. 9. 1. 21:38
나무들의 교사 나무들의 희미해진 복도 저편에
뒤집으면 검게 탄 발바닥이
화산의 분화구를 밟고 있고,
꽃들은 밑에 거울을 하나씩 감추고
대지 위에 꽃잎을 이어 붙이고 있다
비 오는 날
퍼붓는 폭풍우 속
간이식당 유리창 곁에서
국수를 미친듯이 먹고 있는 여자의 이미지ㅡ
민둥산인 마음아
울지 말아라, 붉게 울지 말아라
올 봄은,
빵이 유일한 나의 친척이었네
올 봄에는 하수구로 미친 듯이 빠져나가는 동그라미
젖은 머리카락 한움큼 남았고,
너저분한 시장 바닥에 한없이
낮아지는 충격으로 빗속에 방치된 술취한 사내가,
혼몽한 잠에 빠져
빗방울 속에 커다랗게 부풀어오른,
간이식당 유리창에 퍼붓는 눈동자가 지켜보는,
미친 여자 등의 포대기에 감싸여
흘러내리는 국숫발 속에서 몸을 빼며
빗방울 속에 떠오른 작은 성냥 불빛,
또 하나의 눈동자를 손가락으로 꾹꾹 밀어내리고 있다
유리창에 꽃잎을 피워낸
아이의 손가락 끝에서 꽃들은 상해 있고,
밑에 빵냄새를 풍기며
거울을 반짝이고 있네
*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 창작과 비평사(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