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여자 1 [이대흠]
청보리 필 때는 청보리처럼 푸르게 웃음짓던 여자
빈 들 보리밭 가 점심 굶고 걸어도 마냥 나를 배부르게 하였던 여자
쓸쓸함이 산수유 꽃그늘 같아서 열에 들뜬 내 머리를 가만히 다스려주고
쉬운 분노와 잦은 뉘우침을 반복하던 나에게 가시몸 속 탱자꽃을 보여주던 여자
내 오래 절망했을 때 치약처럼 상큼한 냄새로 제 몸이 걸레되어
더께 낀 내 속을 찬찬히 닦아주던 여자 내가 아플 때면
메꽃잎 같은 손으로 상처의 뿌리를 매만져주던 여자 눈동자가
초꼬지불 같아서 어둠속을 초롱초롱 빛내던 여자 그 눈동자에
눈부처로 있는 게 즐거워 오래도록 눈 마주보았던 여자
불경 같은 여자 연꽃 같은 여자 숯불 같은 여자 차심 같은 여자
짐승 같은 여자
마른 낙엽 밑 돌멩이처럼 감추어진 여자 잔바람에도 쉬 드러나 찢긴 내 맨살을 아리게 하는 여자 덖은 찻잎에 숨은 그늘처럼 오래도록 감추어져 있다가 맑은 찻물로 우려지곤 하는 여자 내 오래 사랑하였고 한번도 미워한 적 없었던 여자 너무 깊이 사랑했으므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그 여자 모두에게 버림받고 아파 울더라도 곁에 두고 싶었던 여자 몸 영 못 가누게 되어 기저귀 차고 지내게 되면 내 손수 기저귀 갈아주고 고운 노래 불러주고 싶었던 여자 내 숨막힌 세월 숨통 터주고 제 아픔 하나도 나누어주지 않았던
나쁜 그 여자, 생각하면 목련길이 떠올라서 세상의 모든 밤을 봄밤으로 만드는 여자 꽃에 허기진 나를 밤 깊도록 잠 못 이루게 하고 검게 바랜 목련 꽃잎에 눈물 떨구게 하는 여자
과냥과냥 불러보면 어느날 문득
자응자응 대답할 그 여자
* 귀가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