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몽해항로 3 [장석주]
초록여신
2010. 8. 5. 18:05
몽해항로 3
ㅡ 당신의 그늘
구월 들어 흙비가 내리쳤다.
대가리와 깃털만 남은 멧비둘기는
포식자가 지나간 흔적이다.
공중에 뜬 새들을 세고
또 셌다, 자꾸 새들을 세는 동안 구월이 갔다.
식초에 정어리가 먹고 싶었다.
며칠 입을 닫고 말을 삼간 것은
뇌수막염에 걸린 듯 말이 어눌해진 탓이다.
여뀌와 유순한 그늘과 나날이 어여뻐지는
노모와 함께 나는 만월의 슬하에 든다.
당신의 그늘을 알아,
당신에게 그늘이 없었다면
몇 그램의 키스를 탐하지 않았을 터다.
만월에는 오히려 성운(星雲)의 흐름이 흐릿하다.
금식 사흘째다. 모자를 쓰고
안성 시내를 나갔다가 원산지 표시가 없는
쇠고기를 먹었다. 중국에서는 부화 직전의
알을 깨서 통째로 씹어 먹는다고 했다.
사람의 식욕은 처절하다.
초승달이 뜨고 모란꽃 지던 밤은
멀리 있었다, 밤엔 잠이 오지 않아
따뜻한 물에 꿀을 타서 마셨다.
흑해가 보고 싶었다.
물이 무겁고 차고 검다고 했다.
날이 차진 뒤 장롱에 넣었던 담요를 꺼냈다.
안성종고 이영신 선생이 올해 텃밭 수확물이라고
고구마 한 박스를 가져왔다.
조개마다 진주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삽살개의 눈에 자꾸
눈곱이 낀다. 속병을 가진 모양이다.
집개는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를 못하는데,
나는 치통 때문에 신경 치료를 받으러
두 달간이나 치과를 드나든다.
작년보다 흰 눈썹이 몇 올 더 늘고
바둑은 수읽기가 무뎌진 탓에 승률이 낮아졌다.
흑해에 갈 날이 더 가까워진 셈이다.
* 몽해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