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소를 타고 여름으로 오는 아침 [이영주]
고대 도시로 오기 위해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왔습니다. 끝없이 늘어선 쪽문을 지나 두 계절을 건너오느라 발목이 다 젖었네요 태양이 묽은 반죽처럼 흘러내릴 때 도마뱁의 꼬리를 쫓아 푸른 잠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저 구름 위에 앉은 산악 민족들은 어떤 얼굴로 잠을 불렀던 것일까요. 나는 휴게소에 쭈그리고 앉아 막대기를 휘휘 돌립니다. 겨울에서 여름으로 건너오면서 무엇을 들고 왔을까요? 오랫동안 굽어 있던 어깨를 가방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키 작은 국경 주민들이 웃고 있어요. 퉁퉁 부은 심장. 계절 없는 민족. 거대한 황금 불상의 이름은 전락(轉落). 당신은 하얀 머리칼을 자르고 산악 민족의 얼굴을 빌려 씁니다. 흰 소를 타고 여름으로 오는 아침.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린 것은 점점 더 새로워지는 겨울과 여름 사이였습니다.
이영주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00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108번째 사내』가 있다. 현재 '불편'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 언니에게 / 민음사. 2010. 5. 7.
여기 이런 시인이 있다. 20세기와 21세기 사이를, 푸르게 방황하고 유려하게 왕복하는 시인. 저무는 사람 곁에서 함께 저물며 빛나는 시인. 이영주는 가장 어두운 심해에서 해파리가 되어 자체 발광을 한다. 딱딱한 벽돌이 꾸는 꿈을, 구부정하게 잠든 애인을, 성에 낀 202호 창문을, 비둘기의 부러진 한쪽 날개를, 얻어맞은 왼쪽 뺨을, 자살에 실패한 밤을 보살핀다. 휘어지고, 흐느끼고, 깨물고, 만져 보고, 흔들리고, 실족하고, 떠난다. 시인은 지나간 20세기의 천변 하류에서 물고기가 된다. 우리가 살아 내야 할 21세기에서 아름답게 악행을 퍼트린다. 이 방황과 왕복은, 아름다워지는 것보다 훨씬 더 찬란한 착란의 시간이 된다. 나는 시인의 방황을 따라가다, 우리 시의 '미싱 링크(Missing Link)를 발견하게 됐다. 21세기를 열며 우리 시가 잃어버렸던 한 조각이 이 시집에는 들어 있었다.
ㅡ김소연(시인)
그녀의 시는 입김들로 수런거린다. 이 독특한 입김들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우리가 말 뒤로 숨어 온 세계에 대해, 우리가 말을 고르며 감추어 온 세계에 대해 그녀는 자꾸만 "달콤해지려는 종족"처럼 딴청을 피우듯 입김을 부린다. "저는 문 뒤에 있었어요."라고, "묵을 곳은 분화구밖에 없"다고, "집에서 길을 잃었"다고. 문장의 재봉선을 지워 버리고 사라져 버리는 이 세계를 일컬어 '그녀의 입김의 세계'라고 부르기 위해선 우리가 그동안 몰라보았던 그녀만의 독특한 진화의 방식에 한 번쯤 참여해 보아야 한다. 오직 "다른 통로로 가기 위해" 그녀는 "하루 종일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단어들의 혈액형'을 바꾸고, 조용히 "어두운 색깔로 폭죽을" 터뜨리며 자신의 문장 속에 새로운 시어들을 동거시켜 왔다. 그녀와 동거 중인 이 시어들을 그녀의 "동거녀"라고 불러도 좋은 것일까? 그리하여 "아무리 올라가도 짐승의 빛 안이라니"라고 자신이 어떤 미개에 와 있는지를 처연히 고백하는 그녀의 입김을 어떤 화자의 허구라고, 어떤 악행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 입김들을 그녀가 아무도 모르는 숲에서 재봉하고 있는 날개라고 부르련다. 독자들이여, 부탁이니 이 시집 속 페이지마다 위독한 유전자를 살피시라, 꼭.
ㅡ김경주(시인)
'언니'라는 말은 비밀을 나누는 암호다. 은밀한 내부에 시인이 붙인 이름이 언니다. 언니는 "밖에서 안으로" 발화된다. "축축하게 썩어 들어가는 안쪽"이 언니라고 불리며, "축축한 냄새들"과 그런 냄새를 피우는 "버섯들"이 언니라고 호명된다. (……) 아, "안쪽이 버섯 모양으로 뒤집어"진다. 그것은 '안'이 '밖'이 되는 순간. 이때, "성에 낀 2020호 창문을 언니라고 부르"자. 안쪽이 뒤집어진 버섯 언니, 언니라는 창문을 좀 열까? 언니는 나의 가장 안쪽에서 저 바깥을 환기한다. '언니라는 말의 내부'는 외부를, 타인을 창문처럼 달고 있다.
ㅡ김행숙(시인, <작품 해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