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사물 A와 B [송재학]
초록여신
2010. 6. 28. 16:44
까마귀가 울지만 내가 울음을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몸속의 날 것이 불평하며 오장육부를 이리저리 헤집다가 까마귀의 희로애락을 흉내 내는 것이다 까마귀를 닮은 동백숲도 내 몸속에 몇백 평쯤 널렸다 까마귀 무리가 바닷바람을 피해 붉은 은신처를 찾았다면
개울이 흘러 물소리가 들리는 게 아니다. 내 몸에도 한없이 개울이 있다 몸이라는 지상의 슬픔이 먼저 눈물 글썽이며 몸밖의 물소리와 합쳐지면서, 끊어지기 위해 팽팽해진 소리가 내 귀에 들어와 내 안의 모든 개울과 함께 머리부터 으깨어지며 드잡이질을 나누다가 급기야 포말로 부서지는 것이 콸콸콸 개울물 소리이다 몸속의 천 개쯤 되는 개울의 경사가 급할수록 신열 같은 소리는 드높아지고 안개 시정거리는 좁아진다 개울 물소리를 한 번도 보거나 들어보지 못한 사람에게 개울은 필사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 진흙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