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슬픔의 자루 [최정례]

초록여신 2010. 6. 22. 20:38

 

 

 

 

 

 

 

 

 

 

어머니가 꼼짝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오줌과 똥을 치우느라 엎드려 있는데

병원 밖 멀리 기차가 배추벌레처럼 꿈틀거리고

느닷없이 그 짐승이 거기를 가로질러 갑니다

 

 

그 짐승의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무뚝뚝하기도 하고 흐느적거리기도 하고

석양 무렵이었습니다

 

 

햇빛 무서운 대낮에도 마주친 적 있습니다

아이가 잊고 간 도시락 갖다주러 가다가

반짝이는 잎 그물 사이로

농담처럼

그 짐승이 휙 지나는 겁니다

털 오라기 하나 떨구지 않고

길모퉁이 만개한 제비꽃 속으로

 

 

두 귀를 펼친 코끼리처럼

잎 그물 속에 출렁이다가

딱정벌레 오리나무 잎 갉아먹는 소리 속으로

 

 

어느 날인가는 막다른 골목에서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된 그가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던 것도 보았습니다

 

 

내미는 손 잡혀버릴 것만 같아

손 내밀지 못하고

묶어서 자루에 넣어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는데

 

 

지난 유월 오빠가 집 앞 계단에서

말 한마디 못하고 쓰러져 죽었습니다

 

 

왜 자꾸 그 생각이 나는지 모릅니다

그가 잡아 지고 왔던 자루

그는 우리에게 아이스케키를 사다 준 것이었는데

자루 속에는 젖은 얼룩과 막대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 레바논 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