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여름의 인상에 대한 겨울의 메모 [이장욱]
초록여신
2010. 6. 14. 12:06
내가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도시가 불타고
우리는 매일 잠 속으로 돌아갔다.
정직한 날씨였다.
가급적 멍하니 존재하기 위해
자세를 낮추는 개가 있고
여름의 잎새들 사이로는
12월의 눈이 내렸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두터운 외투를 입고 아지랑이 속으로 들어가면
바그다드의 폐허를 걸어가는 늙은 펨므가 있고
뜨거운 폭격기가 날아가고
겨울의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수평선 너머에서 어제의 잠 속으로
긴 파도가 밀려오자 우리는
서로를 등진 채 힘껏 달렸다.
정직한 날씨였다.
우리는 겨울에 다시 만나 지친 개처럼
뜨거운 혀를 내밀겠지만.
* 정오의 희망곡, 문학과 지성사(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