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울 때 안개꽃은 피어나고 [김나영]
내 몸 어디엔가 감옥이 있다. 그 안에 한 마리 우울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우울은 동물성, 내가 키워내는 외로움을 먹고 자란다. 나는 외로운 아이, 날마다 싱싱한 외로움을 키우는 외로운 아이. 외로움의 입자는 우울의 몸을 구성하는 고단백질, 우울의 위(胃)는 프리 사이즈, 음식물이 들어오면 우울의 위는 기하급수적으로 세포분열을 일으킨다.
너와 나 사이에 외로운 바다가 놓여 있어
너는 바다 저쪽에 있고 나는 바다 이쪽에 있어
수평선을 말아 쥐고 자꾸만 달아나는 바다가 있어
목 쉰 그리움으로 불러보는 아득한 이름이 있어
오늘도 우울이 너와 나 사이에 푸릇푸릇 돋아나는 외로움을 뜯어먹는다. 우울의 몸이 점점 비대해지고 있다. 우울이 내 몸 안에서 발광을 하고 있다.
* 왼손의 쓸모, 천년의 시작(2006)
…
김나영 시인이 쓴 시편들의 시적 주체들은 탈을 쓰지 않는다. 그녀는 "바닥의 정신"과 "왼손의 근성"으로 애를 낳고 책을 읽는다. 그녀가 읽는, 어둡고 칙칙한 책은 힘겹게 연명하는 나날의 구체적 일상이다. 그녀는, 자신 앞에 펼쳐진 "굴러가는 시간보다 멈춰 있는 시간이 더 긴 바귀"의 생들과 "열린 감옥에서 종신형을 사는" 생들과 "각주를 달지 않으면 불안한" 생들을 꼼꼼히 읽고 이를 핍진하게 재구성한다.
그녀의 몸속에는 여러 마리의 거미가 산다. 그 거미들이 풀어내는 언어의 거미줄은 점액질이 많고 촘촘하여 한 번 빠지면 누구라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ㅡ이재무(시인)
김나영의 시는 그의 시가 가지고 있는 감춤과 드러냄의 미학을 체험의 구체성과 명징한 사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준다. 감춤과 드러냄이라는 김나영 시의 미적 방법론은 본질적으로 그의 의식과 무의식의 사이에 있으며 그 기저에 콤플렉스가 자리하고 있다. 그의 의식은 끊임없이 감춤 쪽으로 작용하고 싶어 하지만, 그의 무의식은 그의 의식이 감추고 싶어 하는 것들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의 시가 유독 소외된 타자들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이나, 우리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들, 즉 섹스나 폭력, 혹은 허위성 등에 과감해지는 것은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콤플렉스와 무관하지 않다. 김나영의 시는 언뜻 보면 쉽게 읽히는 평범한 시처럼 보이지만, 그의 시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콤플렉스의 표정을 읽어내지 않고서는 그의 시를 온전하게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김나영의 시가 보여주는 깊이 있는 사유와 표현의 명징성은 표피적인 감각이 아닌,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뿜어져 나온 본질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김나영의 시는 따뜻하면서도 예리하고 쉬우면서도 단순하지 않다. 나는 이러한 김나영 시의 바닥이 좋다. 그 바닥만 보면 자꾸 드러눕고 싶어진다.
ㅡ박남희(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