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른다 [김사인]
나의 옛 흙들은 어디로 갔을까
땡볕 아래서도 촉촉하던 그 마당과 길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개울은, 따갑게 익던 자갈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앞산은, 밤이면 굴러다니던 도깨비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런닝구와 파자마 바람으로도 의젓하던 옛 동네어른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님들, 같던 웃음 많던 나의 옛 누님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배고픔들은 어디로 갔을까 설익은 가지의 그 비린내는 어디로 갔을까 시름 많던 나의 옛 젊은 어머니는
나의 옛 형님들은, 그 딴딴한 장딴지들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비석치기와 구슬치기는, 등줄기를 후려치던 빗자루는, 나의 옛 아버지의 힘센 팔뚝은, 고소해하던 옆집 가시내는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무덤들은, 흰머리 할미꽃과 사금파리 살림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의 옛 봄날 저녁은 어디로 갔을까 키 큰 미루나무 아래 강아지풀들은, 낮은 굴뚝과 노곤하던 저녁연기는
나의 옛 캄캄한 골방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할아버지는, 캄캄한 기침소리와 캄캄한 고리짝은, 다 어디로 흩어졌을까
나의 옛 나는 어디로 갔을까, 고무신 밖으로 발등이 새카맣던 어린 나는 어느 거리를 떠돌다 흩어졌을까
ㅡ문학집배원 김기택의 시배달에서
* 가만히 좋아하는, 창비(2006)
……
그 모든 것들은 마음 속에 새록새록 숨쉬고 있겠지요.
어머니와 아버지는 흘러온 세월 속에서 주름살을 선물받았을 테고요.
할아버지는 이미 사진 속에서만 웃고 계실 테고요.
옛 나는 나의 젊은 날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지요.
떠돌다 흩어졌다 결국은, 흙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하지요.
과거 속으로, 그 아름답던 어린시절로 타임머신 타고 떠나봅니다.
(오늘도 아무도 모를 거라 모른 척 하면서, 초록여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