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봄비에서 여름비 사이 [정영선]

초록여신 2010. 6. 5. 00:40

 

 

 

 

 

 

 

 

 

 

 

 후드득 나뭇잎들 한참을 울고 나서야 반짝인다. 간간이 흐느낌이 멎듯 우산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비를 듣는다. 만개했던 꽃들 빗물 위로 꽃배를 띄운다. 바다로 가는 항해라도 하겠다는 것인가? 꽃이었던 기억까지 썩히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너는 구두 속까지 들어찬 비를 철벅이며 걸었다. 비는 아무데나 고랑을 만들고 하나뿐인 둥근 우산 지붕은 작아서 우리를 다 품지 못했다. 몸의 반씩은 젖은 채로 걸었다. 번들거리며 비는 뻔뻔한 힘으로 뭉쳐지고, 네온의 불빛은 빗물의 무차별 흐름 속에 일렁였고, 우리 또한 일렁였다. 단지 끌려가기를 바라는 우리는 서로 끌어주지 못했다. 가슴속으로 추위 타는 네 그림자를 집어넣는, 그림자에 따뜻한 스웨터를 입혀주는 비 내리는 그림 한 폭만 내 동공에 부조되어 있다.

 

 

 

 

* 콩에서 콩나물까지의 거리, 랜덤하우스(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