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명자나무 우체국 [송재학]

초록여신 2010. 5. 29. 00:37

 

 

 

 

 

 

 

 

 

 

올해도 어김없이 편지를 받았다
봉투 속에 고요히 접힌 다섯 장의 붉은 태지(苔紙)도 여전하다
화두(花頭) 문자로 씌어진 편지를 읽으려면
예의 붉은별무늬병의 가시를 조심해야 하지만
장미과의 꽃나무를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느리고 쉼 없이 편지를 전해주는 건
역시 키 작은 명자나무 우체국,
그 우체국장 아가씨의 단내 나는 입냄새와 함께
명자나무 꽃을 석삼년째 기다리노라면,
피돌기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아가미로 숨쉬니까
떨림과 수줍음이란 이렇듯 붉그스레한 투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명자나무 앞 웅덩이에 낮달이 머물면
붉은머리오목눈이의 종종걸음은 우표를 찍어낸다
우체통이 반듯한 붉은색이듯
단층 우체국의 적벽돌에서 피어나는 건 아지랑이,

연금술을 믿으 니까
명자나무 우체국의 장기 저축 상품을 사러 간다

 

 

 

 

* 진흙 얼굴, 랜덤하우스중앙(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