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충돌 [김명인]
초록여신
2010. 5. 16. 07:39
우리가 그것을 사고라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모든 예정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다
가령, 시야를 어지럽히는 하루살이
떼만 하더라도
기분좋은 숲속 데이트를 망쳐놓지만
때로 손의 백 킬로에 부딪힐 때, 저것들이
미리 그 충격을 상상하고 있었을까,
구겨진 차체와
차창을 뚫고 나온 핸들, 유량계
였을 철판 사이에 끼여 손을 반쯤 잘려 밖으로
삐져나와 있다, 핸들을 잡았던
팔뚝에 기분좋게 매달렸을 시간이 뭉클한
핏덩이로 응고되어 햇살에 반짝인다
조금 전까지 들뜬 여정에 있던 남녀는 더 먼 나라의
여객으로 편성되었겠지만
대체 사고란 은행처럼 예측되며 무너지는 게 아니리라
그 직전까지 자유로웠을
머릿속의 내용물이 쏟아지고
흩어진 생각 사이로 어지럽게 하루살이들 난다
그 춤들을 물리친 자리는 조사반
두 명이 흰 금으로 표시해둔다
모든 예정되지 않은 충돌은 자제를 잃은
구간이 저렇게 짧고
더 큰 빅뱅에 편입되기까지가 한순간임을,
천국과 이 길이 이처럼
무심코 이어지는 것을 알면 생의 투기꾼들
그 우연도 미리 구획하러 다투어 달려갈 것인가
* 길의 침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