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내 쪽으로 당긴다는 말 [정철훈]

초록여신 2010. 5. 8. 09:56

 

 

 

 

 

 

 

 

 

 

 

 

 

새벽이 차다

내가 자고 나온 방을 질질 끌고 나온 것 같은

새벽이다

동아줄을 어깨에 감고 무언가를 끌고 있는 느낌

일리야 레삔의 그림에서 배를 끄는 노예들 가운데

내가 끼어 있는 것 같다

 

 

실은 아무것도 끌지 않는데

내 쪽으로 끌어당겨지는 무언가가 있다

내 쪽이라는 말은 어느정도

인간의 이기심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끌어당긴다는 것은 내 쪽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내 쪽으로 끌어당기는 포옹

내 쪽으로 흡착하는 입맞춤

내 쪽으로 힘껏 끌어당기고 있는 사랑한다는 말

 

 

말이 당겨진다는 것

당겨져 어깨에 얹힌다는 것

평생 노예가 되어 끌어당겨도 좋을 사랑한다는 말

동아줄이 자꾸만 짧아지고 있다

 

 

 

 

* 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 / 창비, 2010. 4. 26.

 

 

 살아가는 일은 대체로 불우(不遇)의 연속이다. 그리고 사랑 또한 대부분 상처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것들의 밑바닥에까지 가닿기 위하여 기꺼이 고통과 굴욕을 감내한다. 그것은 존재의 실상이자 삶의 에너지이다.

 정철훈도 예외는 아니이서 그는 그와 부대끼고 사랑하는 모든 관계들의 어긋남과 불편함 속에서 두려움 없이 몸을 던지지만 거기에는 끝없는 탈주와 불귀(不歸)의 굼이 감춰져 있다. 그는 누가 저 자신을 이해한다고 할까봐, 혹은 사랑하게 될까봐 부정하거나 뒤집어놓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어딘가에 끝없이 치이며 사는 시인이 자신에게 던지는 야유와 연민, 그것이야말로 지울 수 없는 존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사는 이 세계에 대하여 비관적이고 비판적이며 나아가 뜨악한 시선을 감추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역시 놓여날 수 없는 이 세계의 일원으로서, 그것은 생의 중심에 가닿고자 하는 방법이자 불우를 즐기는 딴청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사코 안주와 고착을 거부하는 치열성은 도처에 상처를 남기는데 그 상처들이 드러내는 진실은 결국 생은 고립적이며 비루하며 외롭다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고통이나 슬픔마저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자의 역설이자 견딤의 즐거움이다. 불편한 세계를 밀고 가는 언어의 힘과 삶의 이면과 굴곡을 깊숙이 더듬어가는 시편들에서 고투와 외로움의 뼈들이 빛난다.

ㅡ 이상국(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