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무지개 [김명인]

초록여신 2010. 5. 3. 20:14

 

 

 

 

 

 

 

 

 

 

 

비 그치자 저녁 무렵, 동쪽 하늘로

무지개 섰다, 검은 구름

골짜기 사이로 흐르는 햇빛 강, 푸른

사다리 걸쳐놓고

우리를 싣고 가려고 빈 기찻길 멈칫거리는 거기,

 

 

마음 저 홀로 흥건해지면

사는 일에서 너무 멀리 흘러

돌아오는 길 찾지 못할까 봐

허리는 반쯤 잘라 둔덕의 배밭 깊숙이 묻어두고

잠시 허둥대는 가슴만 떠나보내라고

가운데가 희미하게 터진 저 무지개,

 

 

지금 다리를 건너면 너무 늦지 않았을까

벌써 저녁인데, 안쳐논 밥 다 되었을 텐데

걸어서 당도하면 캄캄하게 저물었을 텐데

그때 돌아오면 모두들

늙어서 곤하게 잠들었을 텐데

 

 

홀로 새긴 꿈도 구름 거울에 번지면 저렇게

화사할 줄이야!

북쪽으로 남쪽으로

아린 마음 밖으로

칠색 끈들이 하나씩의 동아줄 되어

어디든 잡고 떠나라고 무지개 섰네

 

 

 

 

* 길의 침묵,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