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다움

목련 [김기택]

초록여신 2010. 4. 29. 23:51

 

 

 

 

 

 

 

 

 

 

어둠이 밀어내려고, 전 생애로 쓰는 유서처럼

목련은 깨어 있는 별빛 아래서 마음을 털어놓는다

저 목련은 그래서, 떨어지기 쉬운 목을 가까스로 세우고

희디흰 몸짓으로 새벽의 정원, 어둠 속에서

아직 덜 쓴 채 남아 있는 시간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으로부터 헤쳐 나오는 꽃잎들이

겨울의 폭설을 견딘 것이라면, 더욱더 잔인한 편지가

될 것이니 개봉도 하기 전 너의 편지는

뚝뚝 혀들로 흥건하리라, 말이 광야를 건너고

또한 사막의 모래를 헤치며 마음이 우울로부터

용서를 구할 때 너는 어두운 하늘을 바라보며

말똥거리다 힘이 뚝 떨어지고 나면

맹인견처럼, 이상하고도 빗겨난 너의 그늘 아래에서

복부를 찌르는 자취와 앞으로 씌어질 유서를 펼쳐

네가 마지막으로 뱉어낸 말을 옮겨 적는다

 

 

 

* 시간의 동공, 문학과 지성사(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