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경꽃집이 되었다 [김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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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 개나리담장을 걸을 때마다 누나 생각에 나는 국경꽃집이 되었다 우리가 살던 파란 대문 집에서 염색공장까지 한없이 이어지던 개나리담장, 누나는 그 길을 따라 출근했다가 얼굴이 노랗게 물들어서 귀가했다 누나가 앓아눕던, 어느 개나리꽃 다 진 날의 저녁 나는 누나의 검은 샛방으로 연탄가스처럼 스며들어, 노란 머리핀을 훔쳤다 나는 그것을 거웃처럼 뒤엉킨 개나리 마른 가지, 그중 가장 억센 한 가지에 달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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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으로부터 편지가 온 날이면 어머니는 새 빨랫비누를 모조리 강판에 갈아 마당에 흩뿌리고 대청소를 했다 집안 구석구석 비누냄새가 만개(滿開)했고, 편지봉투에는 항상 석 장의 편지지 말고도 아름다운 사막의 모래알갱이 몇알씩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모래알갱이를 작은 유리병 속에 모으며, 모래시계를 만들었다 사진 속의 아버지가 밟고 선 인피(人皮)를 펼쳐놓은 듯한 사막, 식물도감에서 본 선인장 그 붉고 선연한 사막의 꽃 생각에 나는 국경꽃집이 되었다
어느해 장마, 나는 어두운 교실에서 물에 잠겨 개구멍같이 좁아진 파란 대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몇년에 걸쳐 모아왔던 모래의 시간이, 말없고 무뚝뚝한 검은 홍수 속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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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코발트블루, 파란 대문의 파랑 속에는 파랑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주 주인을 바꾸며 겹겹이 다른 색깔로 덧칠되어온 파란 대문의 파랑은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파랑이었다 그 파랑의 바로 밑에 노을색의 예쁜 빨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어느날, 나는 못으로 미술시간에 배운 대한민국 전도(全圖)를 대문에 그려넣고 휴전선 이북을 손톱으로 긁어내었다 나는 그 바보 같은 파란 대문을 사랑했다 포클레인에 힘없이 구겨지던, 한 장의 도화지처럼 가냘픈 파란 대문을 사랑했다 언제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 화단의 꽃보다 많은 잡초와 진딧물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든 채송화, 학교에 두고 온 것이 있어 화들짝 돌아서면 파란 대문까지 내려와 숨을 고르고 있는 석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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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자주 국경꽃집이 되었다. 하루에도 열두번씩 얼굴이 붉어지며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하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때마다 땡볕은 내 등줄기에 후끈거리는 작고 뜨거운 봉창을 대고 도망갔다. 밤마다 꿈속에서는, 포클레인에 압사한 대문 앞 버드나무가 제 몸속에 칭칭 감아놓고 있던 나이테를 채찍 대신 꺼내들고, 무섭게 바닥으로 질질 끌며 나를 쫓아오곤 했다.
나는 지금도 자주 국경꽃집이 되곤 하지만 그것은 아침에 발설하면 불길하고 어지러운 꿈자리 같은 것이어서, 아직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다만 그때마다 내 가슴속의 구근 한 덩이가, 두근거리며 온몸 구석구석 무수히 붉은 꽃을 매단 가지를 뻗어올린다. 나는 자주 한 그루 국경꽃집이 되었다.
* 국경꽃집, 창비(2007)
…
그런 파란 대문을 보았다.
그 대문으로 드나들던 사람은 온데 간데 없었다.
잠겨진 철사 회오리 자물쇠만이 그 부재를 실감케 했었다.
저리도 빈틈없이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침묵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파란 대문이 되고 싶었다.
분명 국경꽃집의 파란 대문은 아니었지만,
2010. 03. 28.
(파란 대문 앞에서 저절로 국경꽃집이 될 것만 같은, 초록여신)